[원불교신문] 이야기로 풀어 보는 유물 / 맹세의 기록

이야기로 풀어 보는 유물 / 맹세의 기록
[1731호] 2014년 11월 28일 (금)

이 기록 유물은 가로 14.6cm x 세로 21.3cm 의 종이에 쓰여진 것이다.

상단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하단에는 짧은 구절로 쓴 것에서 2~3줄에 이르는 결심의 글이 연필로 적혀있는 초기 교단의 단상을 우리가 소소영령하게 느껴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유물정리를 하며 이것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는 9인 선진들이 써올렸다는 혈서에서 느끼는 사무여한과 같은 강렬하고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더욱이 실제 존재하는 유물이기에 가슴속이 아리했었다.

글씨의 간격이 균일하고 필체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볼 때 여러 사람이 적었던 것을 수합해서 한사람이 일괄적으로 적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언첩에서 확인된 것처럼 글씨를 모르거나 잘못 쓰는 사람을 위해 대필한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료유물이다.

이 맹세의 기록에 적혀 있는 결심의 내용은 자력생활을 하고, 계문을 준수하며, 사경 독송을 하고 착심을 놓기로 결심하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각자가 실천하는 공부의 표준이 기재되어 있다. 본 유물이 작성된 시기는 원기27년 하선 중에 작성된 유물로 추정되며, 관련된 내용은 〈대종경〉 부촉품 8장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대종경〉 부촉품 8장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선원 대중에게 각자 본래의 서원을 굳게 하며 외학과 외지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맹세의 서약을 올리고 정진하도록 하였다.

열반을 1년 앞두었던 소태산대종사가 일본의 수탈과 억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공부와 사업 그리고 교단을 운영하는데 있어 자력을 키워주고자 지도하였을 때의 간절함과 그에 못지 않은 대중에 대한 자비상이 느껴진다.

이런 분의 제자라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고 낙원세계에 대한 사명감을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원불교의 공부는 생활과 분리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각자의 마음공부 뿐만 아니라 자신 생활의 변화를 통해 삶의 가치와 질적 향상까지 가져올 수 있는 공부법임을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소태산대종사는 초기 교단을 이끌어 갈 때 위와 같은 여러 종류의 기획대로 타 종단과 차별되게 경전 을 완비했으며 또한 그 경전의 가르침대로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실천하며 제자들을 훈련시켰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는 것이 이 '맹세의 기록'인 것이다.

원불교100년을 맞는 이 때 우리 후진들은 소태산대종사의 초기교단 훈련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현시대에 적용시키는 훈련법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 맹세의 기록을 조사해보니, 입선 당시는 50인이라 나오는데 현재 이 기록에는 10여 명 정도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기에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도 교단적으로 조사하고 깊게 연구해서 더 철저히 초기 교단 자료를 찾아야 하겠다.

그리고 현재 상태만이라도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 DB구축을 사명감으로 해야겠다.

초기 교단을 되짚어보며 그에 합당한 귀중한 자료가 발굴되면서 유물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초기 교단에서 이와 같은 최소한의 '형식적 교화 방식' 마저도 간과되고 있는지 우문 아닌 우문을 해보고 싶다.

<원불교역사박물관>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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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이야기로 풀어 보는 유물 / 맹세의 기록
wonmuseum
2015년 02월 03일 오후 15:42

이야기로 풀어 보는 유물 / 맹세의 기록
[1731호] 2014년 11월 28일 (금)

이 기록 유물은 가로 14.6cm x 세로 21.3cm 의 종이에 쓰여진 것이다.

상단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하단에는 짧은 구절로 쓴 것에서 2~3줄에 이르는 결심의 글이 연필로 적혀있는 초기 교단의 단상을 우리가 소소영령하게 느껴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유물정리를 하며 이것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는 9인 선진들이 써올렸다는 혈서에서 느끼는 사무여한과 같은 강렬하고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더욱이 실제 존재하는 유물이기에 가슴속이 아리했었다.

글씨의 간격이 균일하고 필체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볼 때 여러 사람이 적었던 것을 수합해서 한사람이 일괄적으로 적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언첩에서 확인된 것처럼 글씨를 모르거나 잘못 쓰는 사람을 위해 대필한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료유물이다.

이 맹세의 기록에 적혀 있는 결심의 내용은 자력생활을 하고, 계문을 준수하며, 사경 독송을 하고 착심을 놓기로 결심하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각자가 실천하는 공부의 표준이 기재되어 있다. 본 유물이 작성된 시기는 원기27년 하선 중에 작성된 유물로 추정되며, 관련된 내용은 〈대종경〉 부촉품 8장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대종경〉 부촉품 8장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선원 대중에게 각자 본래의 서원을 굳게 하며 외학과 외지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맹세의 서약을 올리고 정진하도록 하였다.

열반을 1년 앞두었던 소태산대종사가 일본의 수탈과 억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공부와 사업 그리고 교단을 운영하는데 있어 자력을 키워주고자 지도하였을 때의 간절함과 그에 못지 않은 대중에 대한 자비상이 느껴진다.

이런 분의 제자라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고 낙원세계에 대한 사명감을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원불교의 공부는 생활과 분리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각자의 마음공부 뿐만 아니라 자신 생활의 변화를 통해 삶의 가치와 질적 향상까지 가져올 수 있는 공부법임을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소태산대종사는 초기 교단을 이끌어 갈 때 위와 같은 여러 종류의 기획대로 타 종단과 차별되게 경전 을 완비했으며 또한 그 경전의 가르침대로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실천하며 제자들을 훈련시켰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는 것이 이 '맹세의 기록'인 것이다.

원불교100년을 맞는 이 때 우리 후진들은 소태산대종사의 초기교단 훈련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현시대에 적용시키는 훈련법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 맹세의 기록을 조사해보니, 입선 당시는 50인이라 나오는데 현재 이 기록에는 10여 명 정도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기에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도 교단적으로 조사하고 깊게 연구해서 더 철저히 초기 교단 자료를 찾아야 하겠다.

그리고 현재 상태만이라도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 DB구축을 사명감으로 해야겠다.

초기 교단을 되짚어보며 그에 합당한 귀중한 자료가 발굴되면서 유물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초기 교단에서 이와 같은 최소한의 '형식적 교화 방식' 마저도 간과되고 있는지 우문 아닌 우문을 해보고 싶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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