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사상
원불교는 명칭에서부터 불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불교의 한 종파 또는 새로운 종단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소태산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원불교는 처음부터 불교 종단과는 별개로 독립된 교리체계와 교단조직을 운영해 왔다.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였다. 그는 자신의 깨달은 바는 이미 과거 성현들이 깨달은 바 있었다고 하고, 모든 종교의 진리는 하나이지만 각 시대와 지역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를 폈을 뿐이라고 하여 모든 종교의 교의가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의 진리가 가장 광대하고 대중을 교화하는데 적절함으로 자신의 연원을 석가모니불로 정한다고 하고 장차 불법을 중심으로 하는 새 시대의 새 종교를 창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었다
1) 統宗敎를 지향하는 일원상 진리
소태산은 그의 깨달음의 경지를 일원상으로 표현하고 이는 모든 성현들이 이미 깨달았던 우주의 근원적 진리라고 하였다. 그 궁극적 진리는 형상으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써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장 가깝게 설명하자면 일원상이라는 것이다.
소태산은 일원상에 관하여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원’이라 하였다. 따라서 원불교에서는 일원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원불교의 신앙은 인격신앙이 아니라 진리 자체에 대한 신앙으로 설명된다. 또한 일원의 진리는 모든 성인이 깨달은 진리이며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진리는 하나이며 그 목적 또한 같다고 하여 통종교적인 측면으로 설명된다(일원주의, 일원대도).
2)상생과 조화의 恩사상
소태산은 인간과 만물의 생존 근거는 상호 은혜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천지 우주 만물의 상생 조화의 소산이며(천지은), 부모가 낳고 기르고 교육한 결과이자(부모은), 모든 주위 사람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동포은), 관습과 법률의 질서와 제도 속에서(법률은)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불교에서는 인간의 삶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 四恩의 산물로 규정한다. 따라서 참된 삶의 도리는 사은의 은혜에 보은하는 길이며 보은의 방법은 사은의 도리에 따르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우리사회를 이러한 보은의 사회관계로 개혁하기 위한 덕목으로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 교육, 공도자 숭배의 네 가지를 四要로 제시하고 이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3)현세적 이상세계 – 물질개벽과 정신개벽
원불교 개교의 동기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초래한 인간 정신의 쇠퇴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신개벽이 필요하고 인간 정신의 자주력을 세워야 물질문명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물질문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곧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고루 발전된 참 문명세계인 광대무량한 낙원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인류에 가져다 준 긍정적인 부분과 그 결과로 초래된 물질주의와 인간소외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정신개벽의 구체적인 내용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며 그 방법은 三學으로 제시 되었다. 삼학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로써 마음의 안정을 위한 수양력과 일과 이치에 대한 궁구를 통한 연구, 정의와 불의에 대한 단호한 행동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행동과정을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라고 부른다.
원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세계는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현세적인 이상세계이다. 모든 인류가 쌓아올린 물질문명의 성과를 모든 인간이 고르게 소유하고 상생과 조화의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 세상을 현세에서 이룩하는 것이 원불교의 광대무량한 낙원이다.
4)후천개벽의 역사관
원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세계는 인간의 의지로 이룩해야 할 새로운 세계의 실현이다. 소태산은 이를 후천개벽의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개벽의 전환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어두운 밤이 지나고 동방에 밝은 해가 솟으려 하는 때’라고 하였다. 후천개벽의 새 세상은 ‘어리고 어두운 시대를 마감하고 즐겁고 밝은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집집마다 부처가 살고 모두가 미륵불이되는 시대라 하여 인간평등의 세상을 역설하였다. 또한 사회집단이나 국가간에 있어서도 서로 상생과 조화의 관계만이 인류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개벽의 새 시대에는 ‘곳곳이 부처님(處處佛像)’이니 ‘일마다 불공하라(事事佛供)’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의 인류 역사에 대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무한한 진보를 전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