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성지-사적지보기
석두암터
관련인물 | |
---|---|
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실상사 옆 100m거리, 내변산 직소폭포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대종사가 원기 4년(1919)에 들어와 휴양과 제법(制法)을 한 처소로 석두암이 있던 곳이다.
석두암은 송적벽, 김남천이 발기하여 친히 제자들과 지은 3간 초옥으로 동향집이다. 방과 방사이에는 칸막이로 되어 있었고 각 방 옆과 앞에 마루가 불어 있었으며 북쪽에는 부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거북바위가 있고 [석두암(石頭庵)]이라는 간판은 검정바위에 흰색 글씨로 새겨졌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닌 석두암은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
이 집에서 『조선불교 혁신론(朝鮮佛敎 革新論)』과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등을 차례로 초안하였다.
이 터는 또한 익산총부 건설의 인연이 된 서중안 형제를 만나게 되고 교단 초기 많은 역할이 되어졌던 제자들을 만나신 곳이다. 이 곳 석두암에서 사산 오창건을 비롯 문정규, 김남천, 송적벽, 이청풍 등이 시봉하였다.
이 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변산 성지사업회에서는 교강반포 60주년을 기념하여 교강반포 기념비 [일원대도 비]를 세웠는데 이때 [봉래정사 석두암터 비]도 함께 세웠다.
[일원대도 비]는 뒤에 다시 설명을 하고 [봉래정사 석두암터 비]는 석두암 중앙 산비탈에 박혀 있는 자연석 사이에 30cm의 기석을 놓고 그 위에 120cm의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전면에 [봉래정사 석두암 터]를 새기고 뒷면에는 변산 제법성지 사업회 임원명단과 성금 내력 등을 새겼다
석두암은 송적벽, 김남천이 발기하여 친히 제자들과 지은 3간 초옥으로 동향집이다. 방과 방사이에는 칸막이로 되어 있었고 각 방 옆과 앞에 마루가 불어 있었으며 북쪽에는 부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거북바위가 있고 [석두암(石頭庵)]이라는 간판은 검정바위에 흰색 글씨로 새겨졌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닌 석두암은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
이 집에서 『조선불교 혁신론(朝鮮佛敎 革新論)』과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등을 차례로 초안하였다.
이 터는 또한 익산총부 건설의 인연이 된 서중안 형제를 만나게 되고 교단 초기 많은 역할이 되어졌던 제자들을 만나신 곳이다. 이 곳 석두암에서 사산 오창건을 비롯 문정규, 김남천, 송적벽, 이청풍 등이 시봉하였다.
이 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변산 성지사업회에서는 교강반포 60주년을 기념하여 교강반포 기념비 [일원대도 비]를 세웠는데 이때 [봉래정사 석두암터 비]도 함께 세웠다.
[일원대도 비]는 뒤에 다시 설명을 하고 [봉래정사 석두암터 비]는 석두암 중앙 산비탈에 박혀 있는 자연석 사이에 30cm의 기석을 놓고 그 위에 120cm의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전면에 [봉래정사 석두암 터]를 새기고 뒷면에는 변산 제법성지 사업회 임원명단과 성금 내력 등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