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성지-사적지보기
훈련원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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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만덕산 초선터가 성적지로서 관리되기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원기 15년 소태산 대종사의 권장으로 이공주 교무가 임야 50정보를 매입하였다. 그리하여 이준경 이보국 정일지 전일구 이재문 등이 총부에서 파견되어 [홍곡당(洪谷堂)]을 짓고 감나무 등을 심는 등 산전 개간을 하며 약초를 캐다 팔면서 간고한 생활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원기 29년 중길리 상달에 사는 최내선 교도가 홍곡당에서 간간히 법회를 보다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불법연구회 중길리 출장소]간판을 붙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기 32년 상달마을에 불이 나 교당도 전소되어 산전개간과 마을교화의 꿈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후 마을법회도 중단되고 농원도 지킬 사람이 없자 최내선 교도 가족이 이사와 살았다.
6.25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당도 없는 상태에서 농원을 팔자는 의견 등 많은 의견이 분분할 때 동전주 교당 백낙천 교도가 만덕산 농원 개발에 서원을 세워 원기 52년 법당겸 숙소를 짓고 만덕산 전체가 참나무임을 보고 표고버섯 재배를 계획했다. 그후 원기 58년 양제승 교무가 부임하여 긴 세월을 땀과 혼으로 가꾸어 왔다. 만덕산 농원의 주 생산품인 표고버섯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고랭지로 표고버섯 재배가 적격이다. 양제승 교무는 농원 운영을 영육쌍전에 바탕한 산업훈련 도량화 하였다. 원기 68년에 훈련원의 면모를 갖추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후 예비교역자 전지훈련 등 동하선으로 만덕산 초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만덕산 농원은 표고버섯을 비롯하여 각종 자연식품을 생산하여 오닥 최근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만덕산 푸른 생명 효소 등 많은 건강 식품을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다. 만덕산 성지는 훈련원과 산업도량을 겸하여 선진들의 창립의 혼을 체득할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그러나 원기 29년 중길리 상달에 사는 최내선 교도가 홍곡당에서 간간히 법회를 보다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불법연구회 중길리 출장소]간판을 붙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기 32년 상달마을에 불이 나 교당도 전소되어 산전개간과 마을교화의 꿈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후 마을법회도 중단되고 농원도 지킬 사람이 없자 최내선 교도 가족이 이사와 살았다.
6.25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당도 없는 상태에서 농원을 팔자는 의견 등 많은 의견이 분분할 때 동전주 교당 백낙천 교도가 만덕산 농원 개발에 서원을 세워 원기 52년 법당겸 숙소를 짓고 만덕산 전체가 참나무임을 보고 표고버섯 재배를 계획했다. 그후 원기 58년 양제승 교무가 부임하여 긴 세월을 땀과 혼으로 가꾸어 왔다. 만덕산 농원의 주 생산품인 표고버섯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고랭지로 표고버섯 재배가 적격이다. 양제승 교무는 농원 운영을 영육쌍전에 바탕한 산업훈련 도량화 하였다. 원기 68년에 훈련원의 면모를 갖추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후 예비교역자 전지훈련 등 동하선으로 만덕산 초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만덕산 농원은 표고버섯을 비롯하여 각종 자연식품을 생산하여 오닥 최근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만덕산 푸른 생명 효소 등 많은 건강 식품을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다. 만덕산 성지는 훈련원과 산업도량을 겸하여 선진들의 창립의 혼을 체득할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