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성지-사적지보기
이춘풍가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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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경상도 금릉 사람인 이춘풍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사는 고모댁을 환고향(還故鄕) 시킨다고 전라도에 왔다가 대종사를 만나 마음이 황홀하여 '마치 공자님을 뵈온 것 같은 감상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고모 댁과 같이 대종사의 문하에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올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광으로 이사를 오는 도중에 대종사의 명에 의해 영광이 아닌 변산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중곡부락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곰소와 줄포사이 한길가의 집으로, 이 때가 원기 8년(1923) 2월이었다.
이후 중곡부락의 이춘풍 선진가는 대종사의 여러 제자들이 영광 법성포에서 배편으로와 밤을 지내는 유숙처가 되었고, 초당에서 오후 늦게 나와 배편을 알아보고 다음날 일찍 법성포로 나갈 수 있는 중간지점 역할을 했다.
또한 대종사를 찾아오는 많은 신도들이 이 곳에서 길을 물어 바디재를 넘어서 봉래정사로 가는 안내처로도 이용되었다. 그후 대종사가 총부 건설로 익산으로 간 후 이춘풍선진은 변산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원기 7년부터 12년까지 그곳에서 봉래정사의 수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춘풍 선진은 이때 산중풍경(山中風景)을 저술하여 초기 교단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기었다. 후에 출가하여 정기훈련 여선원 교무로 지도를 하고 서울교화에 종사하다 지병으로 휴무하여 원기 15년 말 자택에서 열반하였다.
현재 이춘풍 선진가는 일반인의 소유로 넘어가져 있고 건물은 새로 지어져있으며 그 자리만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영광으로 이사를 오는 도중에 대종사의 명에 의해 영광이 아닌 변산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중곡부락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곰소와 줄포사이 한길가의 집으로, 이 때가 원기 8년(1923) 2월이었다.
이후 중곡부락의 이춘풍 선진가는 대종사의 여러 제자들이 영광 법성포에서 배편으로와 밤을 지내는 유숙처가 되었고, 초당에서 오후 늦게 나와 배편을 알아보고 다음날 일찍 법성포로 나갈 수 있는 중간지점 역할을 했다.
또한 대종사를 찾아오는 많은 신도들이 이 곳에서 길을 물어 바디재를 넘어서 봉래정사로 가는 안내처로도 이용되었다. 그후 대종사가 총부 건설로 익산으로 간 후 이춘풍선진은 변산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원기 7년부터 12년까지 그곳에서 봉래정사의 수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춘풍 선진은 이때 산중풍경(山中風景)을 저술하여 초기 교단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기었다. 후에 출가하여 정기훈련 여선원 교무로 지도를 하고 서울교화에 종사하다 지병으로 휴무하여 원기 15년 말 자택에서 열반하였다.
현재 이춘풍 선진가는 일반인의 소유로 넘어가져 있고 건물은 새로 지어져있으며 그 자리만 알아볼 수 있다.